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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 나무 - 유하 본문

읽고보다/메모하다

살구 나무 - 유하

자그니 2003. 10. 23. 11:01

살구나무 사라진 자리를 보면, 햇빛은
살구나무 쥐어주던 누군가의 손길처럼 내려앉고
가슴 속엔 아직도 살구꽃 핀다
베어버린 살구나무와
벨 수 없었던 살구나무의 새콤한 정령
정령이 살아남은 것은 그것의 움직임을
추억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난 꿈꾼다 욕정이 끝난 자리에도
사랑이 살구꽃처럼 피어나기를
욕정에 배부르기 보다는
살구를 쥐어주는 손길의 따스한 여운에 배부르기를

지워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슬픔은 세월이 흐를수록 잘 익은 살구처럼 더욱 무거워지고
그대 추억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살구나무 자리 정령 그 분주한 움직임도 마침내 멈추리라.



너무 많은 사람을 사랑해서
추억해야할 것들이 많아서
그리고,
지금 만들고 있는 추억들도 많아서
죽을때까지, 아파해야해도

기.뻐.
사랑할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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