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저는 2006년 2월 17일, 뇌막졸중으로,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생전에 써 둔 것입니다. 내 의지로 장례ㆍ영결식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 집도 당분간 사람이 살지 않게 되니 조위금이나 조화 등 아무 것도 보내지 말아주세요. '그 사람도 떠났구나'하고 한순간, 단지 한순간 기억해 주시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한겨레 신문에 실리는 서경식의 「심야통신」이라는 칼럼이 있습니다. 지난 주에 실린 「죽은 자가 보내온 부음」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子, Ibaragi Noriko)라는 일본 시인이 하늘로 돌아갔음을 몰래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에 소개해드린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자신이 지켜라」, 「내가 가장 예뻤을 적에」라는 詩을 쓴 시인입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단 한 편의 시집도 소개된 적이 없는, 그런 시인이기도 합니다.
그가 떠났다고 합니다. 서경식은 그의 형 서준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형, 형과 나에게 '유토피아'를 주었던 시인이 떠났어-라고. 그리고 나도, 슬피 한번 뇌까려 봅니다. 그 사람도 떠났구나, 그 사람도 떠났구나-하고.
기대지 않고
더 이상 기성 사상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기성 종교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기성 학문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어떠한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오래 살면서 마음속으로 배운 건 이 정도
내 눈 귀 내 두 다리만으로 선들
무슨 불편이 있으랴
기댈 건
오로지 의자 등받이뿐
6월
어디엔가 아름다운 마을은 없을까 하루의 일과 끝에는 한 잔의 흑맥주 괭이를 세우고 바구니를 내려놓고 남자나 여자나 커다란 맥주잔을 기울이는
어디엔가 아름다운 거리는 없을까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단 가로수가 어디까지나 잇달았고 제비꽃 빛깔의 노을속에 젊은이들의 다정한 속삭임이 가득찬
어디엔가 사람과 사람과의 아름다운 힘 없을까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친근함과 재미, 그리고 분노가 날카로운 힘이 되어 솟아오르는
어린 소녀는 생각했었지
어린 소녀는 생각했었지 아줌마들의 어깨는 왜 저렇게 은은히 풍겨 올까 하고 물푸레나무처럼 치자나무처럼 아줌마들의 어깨를 감싸는 저 아늑한 아지랑이 같은 것은 무엇일까? 어린 소녀는 자기도 그런 것을 갖고 싶었지 그 어느 아름다운 소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멋있는 그 무엇인가를······ 어린 소녀가 어른이 되어서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 어느날 문득 생각나게 되었지 아줌마들의 어깨에 내려 쌓이는 저 마음결 고운 것은 하루 또 하루 남을 사랑하며 살기 위한 그저 그러한 피로였다고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길거리는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쪽에서 푸른 하늘 같은 것이 보이기도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많이 죽어갔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몸맵시를 생각해 볼 틈마저 잃고 말았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그 누구 하나 다정한 선물도 보내주지 않았다 사내들은 거수경계밖에 모르고 서글서글한 눈매만 남겨놓고 죄다 떠나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고 내 마음은 딱딱했고 손발만이 밤빛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나라는 전쟁에 졌다 어디 그럴 수가 있는가 블라우스의 팔을 걷어올리고 비굴한 동네를 걸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서는 재즈가 들렸다 금지된 담배연기를 들이마셨을 때처럼 어찔어찔하면서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탐식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아주 불행했고 나는 전혀 종잡을 수 없었고 나는 너무나 쓸쓸했다
그러기에 마음먹었다 될 수 있는 한 오래 살자고 나이 들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할아버지처럼 말이지
When I was most beautiful, Cities were falling And from unexpected places Blue sky was seen. When I was most beautiful, People around me were killed. And for paint and powder I lost the chance.
When I was most beautiful, Nobody gave me kind gifts, Men knew only how to salute And went away. When I was most beautiful, My country lost the war. I paraded the main street With my blouse sleeves rolled high!
When I was most beautiful, Jazz overflowed the radio, I broke the prohibition against smoking Sweet music of another land! When I was most beautiful, I was most unhappy, I was quite absurd, I was quite lonely.
Words by Noriko Ibaragi (1957); Music by Pete Seeger (1967) TRO - 1968 & 1970 Melody Trails, inc., New York, NY.
나무열매
드높은 우듬지에 푸르고 큼직한 과실이 한 개 현지의 젊은 애가 쭈르르 나무를 타고 올라 손을 뻗치려 하다가 굴러 떨어졌다 나무 열매로 보였던 것은 이끼 낀 한 개의 촉루이다
민다나오 섬 26년의 세월 정글의 조그만한 나뭇가지는 전사한 일본 병사의 해골을 어쩌다가 슬쩍 걸쳐서 그곳이 눈구멍이었던가 콧구멍이었던가도 모른 채 젊고 튼튼한 한 그루의 나무로 거침없이 성장했던 것이다
생전 이 머리를 소중하게 귀여운 것으로 끌어안았던 여자가 물론 있었을 테지
어린 관자놀이의 숫구멍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분은 어떤 어머니 이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감아 정답게 끌어안던 이는 어떤 여자 만일 그 여자가 나였더라면······
절규하고 그대로 1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시금 草稿를 꺼내 메워 두어야만 할 縱行 찾아내질 못해 다시 몇 년인가 지나가는구나
만일 그 여자가 나였더라면······이 다음에 이어져야 할 一行을 결국 세워두질 못한 채
자신의 感受性 정도는
바싹바싹 말라가는 마음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마라 스스로가 물 주는 것을 게을리 하고서는
나날이 까다로워져 가는 것을 친구 탓으로 돌리지 마라 유연함을 잃은 것은 어느 쪽인가
초조함이 더해 가는 것을 근친(近親)탓으로 돌리지 마라 무얼 하든 서툴기만 했던 것은 나 자신이 아니었던가
초심(初心)이 사라져 가는 것을 생활 탓으로 돌리지 마라 애초에 깨지기 쉬운 결심에 지나지 않았던가
잘못된 일체를 시대 탓으로 돌리지 마라 가까스로 빛을 발하는 존엄(尊嚴)의 포기
자신의 감수성 정도는 자신이 지켜라 바보같으니라고
自分の感受性くらい 自分で守れ ばかものよ
이웃나라 말의 숲
숲속으로 깊숙히 가면 갈수록 나뭇가지 엇갈리며 더욱 깊숙해져 외국어의 숲은 울창해 있다 한낮이면서 역시 어두운 오솔길 혼자서 터벅터벅 「구리」는 밤 「까제」는 밤 「오바케」는 도깨비 「헤비」는 뱀 「히미쯔」 비밀 「다케」 버섯 무서워 「코와이」
입구 근처에서는 들떠 있었다 모든 것이 죄다 신기하기만 하고 명석한 음표문자와 청렬한 울림에
「히 노 히까리」 햇빛 「우사기」 토끼 「데타라메」 엉터리 「아이」 사랑 「기라이」 싫어요 「다비비토」 나그네
지도 위 조선국을 새까맣게 먹칠을 해 놓고 가을 바람을 듣다 타그보그의 메이지 43년의 노래 일본말이 한때 걷어차 버리려 했던 이웃나라 말 한글 지워 버리려 해도 결코 지워 버릴 수 없었던 한글 용서하십시오 「유루시테 쿠다사이」 땀을 줄줄 흘려가며 이번엔 이쪽이 배울 차례입니다 그 어떤 날아의 언어도 끄내 깔아눕히지 못했던 굳건한 알타이어, 이 하나의 精髓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하려고 온갖 노력을 치르며 그 아름다운 언어의 숲으로 들어갑니다
왜놈의 후예인 저는 긴장을 하지 않으면 금세 한 맺힌 말에 붙잡혀 먹힐 것 같고 그러한 호랑이가 정말 숨어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옛날 옛날 그 옛날을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대」 라고 전해져 오는 우스꽝스러움도 역시 한글이기에
어딘가 멀리서 웃으며 떠드는 목소리 노래 시침 떼고 웃기는 속담의 보고이며 해학의 숲이기도 하는 대사전을 베개로 선잠을 자면 「네 들어옴이 늦었다」 라고 尹東柱가 조용히 힐책을 한다 정말 뒤늦었다 하지만 어떤 일으든 너무 늦었다고 생각지 않기로 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인 윤동주 1945년 2월 후꾸오까 형무소에서 옥사 그것이 당신들에겐 광복절 우리들에겐 降伏節 8월 15일을 거슬러올라 불과 반 년 전이었을 줄이야 아직 학생복을 입은 채로 순결만을 동결시킨 듯한 당신의 눈동자가 눈부십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렇게 노래하고 당시 감연히 한국시를 썼던 당신의 젊음이 눈부시고 그리고 애잔합니다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달빛처럼 맑은 시편 몇 개를 서투른 발음으로 읽어 보지만 당신은 씽긋도 하지 않는다 옳고 그름도 없는 것 앞으로 어디쯤 더 갈 수 있을는지요 갈데까지 가서 쓰러져 눕고 말고 싸리 들녘에
- 日本女性詩人代表詩選, 강정중 옮김, 문학세계사, 1988 (자그니 주 - 일부 어색한 표현을 고쳤습니다.)